(전략)

                                    2

 새로 온 옥희도 씨는 환쟁이들의 이런 반발을 아는지 모르는지 듬직한 등을 이쪽으로 돌린 채 아무것도 진열되지 않은 쇼윈도를 가려 놓은 부우연 휘장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그릴 것을 마련하기 위해 서랍 속의 사진들을 모조리 꺼내었다. 기한에 관계없이 그리기 쉬운 것, 까다롭지 않은 주문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숱한 얼굴, 얼굴들 ― 이국(異國)의 아가씨들은 한반도 전쟁이 머리 위를 왔다갔다 하는 일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늘진 고뇌가 전연 없이 오히려 인간적이 아닌 동물이라기보다는 화사한 식물에 가까운 ― 만개한 꽃 같은 얼굴들이었다.

그 중에서 특징을 잡기 쉽고 모발이나 눈빛이 복잡하지 않은 것을 몇 장 골라 가지고 옥희도 씨한테로 갔다.

"시작해 보시겠어요?"

그는 조용히 시선을 창에서 나에게로 돌리더니

"고마워."

하고는 누런 종이 봉투에서 가늘고 굵고, 납작하고 둥근 각종의 붓을 우루루 쏟았다.

"어머나, 붓까지 준비하셨어요, 붓은 여기도 있는데……."

나는 빈 깡통에 꽂힌 별로 쓸모 있어 보이지 않는 몽탁한 붓들을 눈으로 가리키며 필요한 몇 가지 일을 일렀다.

"붓이나 물감은 제공하기로 돼 있어요. 헝겊도 제공하기는 하지만 망쳐 놓으면 배상하셔야 되구요. 스카프 하나 망쳐 놓으면 그림 두 장 값이 날아가게 되니까 까딱 잘못하면 하루 종일 헛수고하게 되죠. 그래도 망쳐 놓은 만큼의 물감 값은 따지지 않으니 관대하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참 손님이 마땅치 않아 하면 몇 번이라도 고치든지 뭣하면 아주 새로 그려 줘야 되구요. 아무튼 제일 중요한 건 닮게 그리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는 대답 대신 어린애처럼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그와 나의 눈이 깊게 마주쳤다. 내가 먼저 섬칫해져서 눈을 피했다. 아주 황량한 풍경의 일각 같은 것이 그의 눈 속에 깊이 잠겨 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는 연방 고개를 기우뚱거려 가며 밑그림을 그리면서 가끔 주문(呪文)처럼 나직이, "아주 닮게 아주 닮게." 라는 것이었다.

나는 암만해도 그가 못 미더워 손님이 없는 사이사이마다 그의 곁에 가서 그림이 돼 가는 것을 지켜보고 내 돼먹지 않은 글씨도 읽어 주며 하였다.

"너무 닮게에만 신경을 쓰실 필요는 없어요. 조금쯤 달라도 뭐……이를테면 사진보다 조금 예쁘게 닮을 수 있으면 그것도 괜찮으니까요. 요령이 있어야 해요."

"흥 그런 요령이 하루 아침에 생길 줄 아나베. 남은 몇 년 두고 익힌 거라구."

평소 말수 적은 진(秦)씨까지 오늘은 조금 빈정댄다.

"저……이런 그림에 경험이 좀 있으신지?"

"그야 난 본시가 환쟁인걸."

"그럼 전직(前職)도 역시……. 극장 같은 데도 계셔 봤겠군요."

"아니. 직장은 여기가 처음이고, 난 그냥 환쟁이었어요."

(그냥 환쟁이라? 그냥 환쟁이……)

(중략)

                                    9

 나는 완구점의 침팬지를 만나고 싶었다. 그 유쾌한 친구가 위스키를 따라 마시고 또 마시고 하는 광적인 폭음에서 차차 차차 동작이 느려지며 허탈로 돌아가는 모습 앞에 있고 싶었다. 여전히 노점인 완구점은 붐볐고 구경꾼은 거지반 어른이었다. 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른이 나뿐이 아니어서 적이 마음이 놓였다.

무더기로 쌓인 자동차, 기차, 인형, 비행기, 총칼 따위를 다 제쳐 놓고 유독 손님들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는 침팬지란 놈이 주인을 위해 돈을 좀 벌어 준 것 같지는 않으니 뻔뻔한 놈이다.

오늘은 그 놈이 옆에 시종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눈이 툭 불그러지고 흰 이를 드러낸 검둥이 인형이 꽁무니에 태엽을 단 채 징을 들고 서서 주인의 향연(饗宴)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표정한 완구점 주인 영감이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나서, 쭉 늘어선 구경꾼을 시들한 듯이 흘겨보고 마지못한 듯이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을 침팬지쪽으로 뻗는다. 개막 징을 듣는 관객같이 나는 숨을 죽이고 흥분을 누른다.

주인 영감은 먼저 침팬지 꽁무니의 태엽을 틀어 주고, 이어 검둥이의 태엽을 틀어 나란히 세웠다.

두 놈은 리드미컬하게 어깨춤을 춰 가며, 한 놈은 위스키를 따라 마시고 한 놈은 신나게 징을 두드렸다. 두 놈은 아주 호흡이 잘 맞아 한 놈이 점점 빠르게 거푸거푸 위스키를 따라 마실수록 한 놈은 주흥을 돋구듯이 점점 세게 징을 쳤다.

그러자 구경꾼들은 덩달아 전신을 흐느적대고 웃고 또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다웃다 나중에는 눈귀에서 눈물이 흐르도록 웃었다.

구경꾼들이 숨을 죽이기 시작하자 그 놈들의 동작도 점점 느려졌다. 그들의 동작이 완전히 멈추자 맥이 탁 풀리며 몸이 흐느적흐느적 땅으로 흘러내릴 듯한 피곤이 왔다.

눈귀의 눈물을 닦고 사람들이 흩어지고 새 사람이 오고 하는데 나는 그저 망연히 서 있었다. 머리가 텅빈 채 아무런 생각도 들어서지 않았다. 나는 문득 내가 쓰러지지도, 땅으로 흘러내리지도 않고 서 있을 수 있음은 누군가의 부축 때문인 것을 깨닫는다. 그의 부축은 능숙하고 편안했다. 찬란한 빛처럼 어떤 예감이 왔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오래도록 그 예감만을 즐겼다.

"그만 가지."

예감대로 옥희도 씨의 음성이었다. 따뜻하고 착한 시선이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오랜 별리(別離) 끝에 해후처럼 반가움이 벅차 왔다. 우리는 사람을 헤집고 나와 같이 걸었다.

"어린애같이 아직도 장난감을 좋아하나?"

"선생님은요?"

"별안간 그 놈이 보고 싶었어. 그 주정뱅이가……."

"저도요. 막 뛰어왔어요."

"나도 그랬어. 왜 그랬을까? 사뭇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이었어."

"우리는 우리의 해후를 예감했나 봐요."

"해후라니? 우리는 요새 늘 같이 있었는데…."   

(중략)

                                    12

 "그림은 다 그리셨어요?"

제일로 궁금하던 것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 있어요? 좀 봐도 될까요?"

무릎에 앉았던 막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웃방으로 난 장지를 열었다. 나는 그제야 오늘 부인이 애들을 웃방으로 보내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전등이 없는지, 있는데도 안 켰는지 웃방은 어둑한데 80호 정도의 캔버스가 벽에 기대어 놓여 있고 넓지 않은 방바닥은 온통 빈틈없이 어지러져 있었다. 테레빈유의 냄새가 확 끼쳤다.

나는 캔버스 위에서 하나의 나무를 보았다. 선뜻한 느낌이었다.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우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단한 모습의 고목(枯木)이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화면 전체가 흑백의 농담으로 마치 모자이크처럼 오톨도톨한 질감을 주는 게 이채로울 뿐 하늘도 땅도 없는 부우연 혼돈 속에 고목이 괴물처럼 부유(浮遊)하고 있었다.

한발(旱魃)에 고사한 나무―그렇다면 잔인한 태양의 광선이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태양이 없는 한발―만일 그런 게 있다면, 짙은 안개 속의 한 발……무채색의 오톨도톨한 화면이 마치 짙은 안개 같았다.

왜 그런 잔인한 한발이 고사시킨 고목을 나는 그의 캔버스에서 보았을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꼬마는 잽싸게 장지문을 닫아 버렸다.

향긋한 생강차가 식어가는데 나는 마실 구미를 잃었다.

나는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감상안이 전연 없는 채 그림을 단순하게 사랑하고 즐겨 왔었다. 국민 학교 교실 벽에 장식한 그림에서부터 화랑에 전시된 유명 무명 화가의 그림들, 또 인쇄 잘된 화첩의 대가의 그림들을 사랑했다.

나는 그런 그림들에서 어떤 언어를 시각했다기보다는 그냥 그 빛과 빛깔을 즐겼었다. 삶의 기쁨이 여러 형태의 풍성한 빛으로 나타난 그림들을 사랑했다. 이렇게 나의 그림에 대한 눈은 오색 풍선을 동경하는 아이들처럼, 포목점 앞에서 아름다운 천을 선망하는 여인처럼 소박하고 단순했다.

내 이런 소박한 감상안은 그의 그림에 적지아니 당혹하고 있었다.

(중략)

                                   17

무릎에 앉았던 막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윗방으로 난 장지를 열었다. 나는 그제야 오늘 부인이 애들을 윗방으로 보내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전등이 없는지, 있는데도 안 켰는지 윗방은 어둑한데 80호 정도의 캠버스가 벽에 기대여 놓여 있고 넓지 않은 방바닥은 온통 빈틈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테레빈유의 냄새가 확 끼쳤다.

나는 캠버스 위에서 하나의 나무를 보았다. 섬뜩한 느낌이었다.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이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화면 전체가 흑백의 농담으로 마치 모자이크처럼 오톨도톨한 질감을 주는 게 이채로울 뿐 하늘도 땅도 없는 부연 혼돈 속에 고목이 괴물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한발에 고사한 나무 - 그렇다면 잔인한 태양의 광선이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태양이 없는 한발 -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짙은 안개 속의 한발……무채색의 오톨도톨한 화면이 마치 짙은 안개 같았다. 왜 그런 잔인한 한발이 고사시킨 고목을 나는 그의 캔버스에서 보았을까?

……

S회관 화랑은 3층이었다. 숨차게 계단을 오르자마자 화랑 입구였고 나는 마치 화랑을 들어서기도 전에 입구를 통해 한 그루의 커다란 나목(裸木)을 보았다.

나는 좌우에 걸린 그림들을 제쳐 놓고 빨려들 듯이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枝]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무, 그 옆을 지나는 춥디 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나목을 저리도 의연(毅然)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래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나무와 여인'……그 그림은 벌써 한 외국인의 소장으로 돼 있었다.

나는 S회관을 나와 잠깐 망연했다. 오랜 여행 끝에 낯선 역에 내린 듯한 피곤인지 절망인지 모를 망연함, 그런 망연함에서 남편이 나를 구했다.

"어디서 차라도 한 잔 하고 쉬었다 갈까?"

"저기가 어때요?"

나는 턱으로 바로 눈앞에 보이는 덕수궁을 가리켰다.

덕수궁 속의 은행의 낙엽은 한층 더 찬란했다.

우리는 은행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황금빛 세례에 몸을 맡겼다.

아이들이 뛰고, 연인들이 거닐고, 퇴색한 잔디에 쏟아지는 가을의 양광은 차라리 봄보다 따습다.

"아이들을 데려올걸."

남편이 다시 나를 상식적인 세계로 끌어들인다.

빨간 풍선을 놓친 계집아이가 자지러지게 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빠져들 듯이 풍선이 멀어 간다.

드디어 빨간 점을 놓치고 만 나는 눈물이 솟도록 하늘의 푸르름이 눈부시다.

옆에 앉은 남편도 풍선을 쫓았던가 고개를 젖힌 채 눈이 함빡 하늘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뿐, 이미 그의 눈엔 십 년 전의 앳된 갈망은 없다. 그뿐이랴. 여자를 소유하고 가정을 갖고 싶다는 세속적이 소망 외에는 한번도 야망이나 고뇌가 깃들어 보지 않은 눈. 부수수한 머리가 늘어진 이마에 어느새 굵은 주름이 자리잡기 시작한 중년의 그가 나는 또다시 낯설다.

저만치서 고등 학생들이 배드민턴을 친다. 콕이 나비처럼 경쾌하게 날아와 라켓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젊은 연인들의 찰나적인 키스의 파열음처럼 감각적으로 들린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의 이마의 주름진 곳에 그런 키스를 퍼부었다.

그가 낯선 게 견딜 수 없어서였다. 그가 아주 타인처럼 낯선 게 견딜 수 없어서였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우수수 바람이 온다.

이미 낙엽을 끝낸 분수가의 어린 나무들이 벌거숭이 몸을 애처롭게 떨며 서로의 가지를 비빈다.

그러나 그뿐, 어린 나무들은 서로의 거리를 조금도 좁히지 못한 채 바람이 간 후에도 으시시 떨고 있었다.

 

※ 요점 정리

*지은이 : 박완서

*갈래 : 장편 소설, 성장 소설, 전후 소설

*배경 : 시간적- 6·25 전쟁 중  

      공간적- 명동의 미군 PX 초상화부와 서울

*시점 : 일인칭 주인공 시점

*성격 : 고백적, 회상적, 체험적, 시대 증언적

*문체 : 논리적인 서술형의 호흡이 긴 문체

작품 개관 : 전쟁으로 황폐해진 환경 속에서 예술이 대한 탐구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가는가 하는 것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다 한 화가의 고통스러운 삶이 배어든 그림 한 장이 인상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다루어진다. '나무와 두 여인'이란 그림에 대한 감상은 소설의 줄거리와 엮이면서 한국 전쟁 이후의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 인생과 예술의 깊은 상호 관계를 해석해 보여준다. 미술 작품 하나가 소설 전체의 이야기와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잘 보여 줄 수 있는 작품이고, 미술과 문학이 서로 어떻게 예술적인 깊이 속에서 만나게 되는지 느껴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조 : 차분한 어조

*제재 : 옥희도와 나의 삶

*주제 : 청춘의 성숙 과정과 진정한 예술가의 길, 청춘의 성숙 과정과 진정한 삶에 대한 깨달음, 고독한 청춘과 진정한 예술가의 성숙 과정,

*구성 :

  발단 - 미군 PX의 초상화부에서 일하게 되는 배경

  전개 - 이경과 옥희도의 만남

  위기 - 옥희도에 대한 이경의 사랑

  절정 - 이경 어머니의 죽음과 옥희도의 떠남

  결말 - 옥희도의 유작전

*특징 : 논리적인 서술형과 호흡이 긴문체로 실제 작품의 허구화, 장르 변환의 형태